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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재(鬼才) 이도사(李道士) (2편)

 

 

공주의 병을 고쳐라.

 

어전에 꿇어앉은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옳지, 올 것이 왔구나. 바로 이거다.' 하면서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상감마마, 황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소인은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한 까닭에 늘상 사냥을 해오던 차 우연치 않게 날쌘 토끼 한 마리를 몰다가 마지막 남은 화살하나를 쏘았더니 공교롭게도 눈에 화살이 맞아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가 그 토끼란 놈을 찾으려고 하다가 이렇게 큰 소란을 피웠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상감마마께서 소인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이도사의 말을 듣고 있던 임금께서는 신하들에게 명을 내려 그 토끼를 찾아 오라 했다. 한참 후에야 이도사가 말하는 토끼가 어전 앞에 놓여졌다.

임금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며 이도사에게,

"정말, 네가 이 토끼를 쏜 게 분명하단 말이냐?"

 

죄인을 국문(鞠問)하듯이 날카롭게 물었다. 가슴이 철렁한 이도사는, '아이고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순간 가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날 수야 있겠나?' 싶어, 임금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 상감마마. 소인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사옵니까.

그러니 소인을 벌해 달라는 게 아닙니까. 어서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도사의 이 같은 말에 임금은 무엇인가 기쁘다는 표정으로, "날이 밝는 대로 내가 따로 너를 부를 테니 그리 알라." 하며 신하들에게 이도사의 거처를 마련해 주도록 명을 내렸다.

 

일생 처음으로 그것도 어명에 따라 마련해 주는 거처에서 잠을 자보다니 실로 가슴 부푼 일이었으나 내일 임금이 어떻게 할지 걱정되었다.

'일단은 내가 예상한 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내심 기쁘기도 하지만 내일이 어떻게 될지? 내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져 당장 목을 베라는 어명이 있을지, 아니면 곤장으로 버릇을 고쳐주라며 겨우 목숨만이라도 부지할 정도의 매를 맞고 쫓겨 보낼지? 아니면 불쌍히 여겨 궁중 노비라도 일자리를 마련해줄지…….'

이도사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웠다.

 

날이 밝자 임금은 다시 이도사를 불렀다. 어전에 다시 꿇어앉은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저 임금의 말 한 마디에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판국인데 그러나 저번 주역팔괘(周易八卦)에는 만사가 풀리고 귀인을 만난다고 했으니 뜻밖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임금은 이도사를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도사는 말할 것도 없고 주위의 신하들까지도 긴장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임금께서 갑자기 이도사를 향해서,

"이놈∼, 네 이놈. 네놈이 진정 토끼의 눈을 꿰뚫었단 말이냐?"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아이쿠 이제 꼭 죽었구나. 그렇지만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였으니, 나도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지.'하고는 임금께 정중한 어조로 우는 시늉을 하면서,"상감마마,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사옵니까(一口二言)?"

 

이도사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절박감에서 끝까지 토안지적 즉, 토끼 눈은 자신의 활로 맞춘 거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그러자 임금은 이도사에게, "그렇다면 정녕 그대가 명포수임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라고 단호한 어조로 묻고 또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왕실에는 내가 부덕한 소치로 공주(公主)가 시름시름 앓고 있어 여간 걱정이 아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스러운 것은 궁중 앞뜰에 있는 느티나무에서 삼경(三更)이 넘은 깊은 밤에 부엉이란 놈이 울기만 하면 공주가 더욱 심하게 앓게 되느니라.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그 부엉이를 잡으려고 백방으로 애를 써 보았으나 나무가 너무 높아 화살을 쏘아 올려도 미치지 못하는 데다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포수는 다 불러보았어도 허사였느니라. 그러니 네가 그 부엉이를 잡아보아라. 다만 어느 명포수나 어느 명장(名將)도 부엉이가 앉아 있는 가지 끝까지는 화살을 쏴 올리지 못했으니 다른 방법을 써도 좋으니라." 임금의 이 같은 이야기는 공주를 아끼는 마음이라 무척 단호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도사에게 크게 기대하는 눈치도 엿보였다.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음을 판단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상감마마, 그 일은 염려마시옵소서. 소인이 열·성·기(熱誠技:활솜씨)를 다하여 공주님의 병을 완치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소인은 어려서부터 활과 주역팔괘, 그리고 더 나가서는 풍수지리에도 다소 아는 바가 있사오니 때를 맞추어 시행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傷心)하지 마시옵소서."

 

이도사는 겸손한 척하면서도 우선 위급함을 면하기 위해 매사에 때가 있음을 주장했다. 이도사는 이왕지사 모든 것이 들통나 죽더라도 마음껏 호의호식 한 번하고 주지육림(酒池肉林)에 수많은 계집을 품안에 안아보는 일생일대 최고의 낙을 누리다 멋있게 죽을 양으로 임금께 아뢰기를, "상감마마 황송하옵니다. 송구스럽게도 지금 당장은 시행이 어렵고 앞으로 백일 후에야 가능하겠사옵니다."

 

그래도 임금은 기쁜 모습으로, "때가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 그대가 정히나 그렇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면 짐이 어떻게 해주면 될꼬?"

이도사는 기회를 놓칠세라, "예. 상감마마. 우선 무엇보다도 앓고 있는 공주마마를 한번 뵈었으면 하옵고, 두 번째는 그 느티나무에 백일 동안 백옥같은 여인 이 삼십명이 매일 고기와 술을 바쳐 지성을 드릴 수 있게 선처해 주시옵소서."

 

임금은 이도사 말대로 행하게끔 신하들에게 명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이도사의 손을 꼬옥 잡고, "공주가 죽고 사는 것은 그대에게 달려있으므로 심혈을 기울여 주시오."

하고 부탁했다. 신하들의 안내로 앓고 있는 공주를 본 이도사는 공주의 앓고있는 병에 관심이 있다는 것보다는 침상의 여리디 여린 옷차림으로 누워있는 아름다운 모습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멍하니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가 누군가가, "그만 일어나시지요."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당황하여, "예∼에∼예,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제의 그 느티나무가 있다는 궁궐 뜰 앞으로 가 보았다.

같이 간 신하에게, "아니 이 나무를 베어버리면 될 게 아니요?" 하자 듣고 있던 신하는,

"이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수백 년 된 신목(神木)으로 손을 댈 수가 없소이다."

이도사는 자신이 실언하였음을 알고,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겠소.

그냥 해 보는 소리지요." 하고 어물어물 넘겨버렸다.

 

느티나무가 어찌나 큰지 나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폭은 장정들 십여 명이 양팔을 쭉 뻗어 둘레를 재어도 모자랄 정도였다. 보기만 해도 겁이 난,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아이고, 나는 꼭 죽었구나. 차라리 약속날짜 백일 되기 전에 공주가 우연히 낫기나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내 목숨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구나.'하며 자탄했다.

 

거처하는 방으로 돌아온 이도사는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하고 역괘(易卦 )를 만들어보았다. 자신이 앉아 있는 방위가 정동쪽이므로 상괘를 뇌(雷)로 하고 시작이 미시(未時:오후 1∼3시)이므로 지(地)로 하괘를 하여 뇌지예(雷地豫)란 대성괘(大成卦:상하괘를 합하여 산출된 괘)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뇌지예란 괘는 이도사가 처해 있는 입장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전도가 밝은 괘였다.

 

특히 뇌지예 괘는 과거보다는 앞날이 길운(吉運)일 것을 희망하여 예(豫)자로 표기했다. 이 예는 기쁘다는 것을 예측한다 하여 기쁠 열자(悅字)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 마디로 좋은 괘였다.

더욱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괘(豫卦)에 대한 문구(文句)를 보면 '봉황생추 만물시생(鳳凰生雛 萬物始生)'이라 하여 마치 봉황이 새끼를 낳은 것 같으며 매사가 새롭게 시작된 다는 뜻으로, 이 괘의 내용대로라면 이조 판서가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벼슬도 할 수 있다는 대상괘(大祥卦)였다.

 

괘를 뽑아본 이도사는 불행중 다행이라는 생각에 이내 상감마마와 약속을 백일로 했던 바, 결행일을 조화가 많다는 경진일(庚辰日)로 정했다. 비록 역괘(易卦)는 좋은 시운(時運)으로 나왔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만약 자신이 지금 거짓말을 했음이 탄로 난다면 살아서 이 궁궐을 나갈 수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죽을 때 죽을 망정 역괘를 막연하게나마 믿어보는 것뿐이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며칠 간 걱정을 하다보니 얼굴은 말이 아니었고 이러다 죽으면 더 원통하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고목에 제사를 올리는 여자(궁노)들과 어울려 마음껏 호색을 즐겼다. 이제 열다섯 살에서 열아홉·스무 살이 태반인 궁녀들과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즐기고 마셨다. 백옥같은 궁녀들의 육체까지도 마음껏 희롱하는 이도사의 행색이야말로 삼천 궁녀를 거느린 의자왕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러한 향락 속에 시간은 흘러 약속했던 백인이 이 삼일밖에 남지 않자. 주색을 멀리하고 두문불출하여 궁궐안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로 했다.

어전에서 우선 죽음이나 면해 보겠다는 절박감에 부엉이를 잡는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이젠 그 실행일이 바로 내일, 모레지 않는가?

 

이도사는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때로는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힘껏 쥐어틀어 보기도 하고 몸 이곳 저곳을 꼬집어보아도 시원치 않았다.

 

※ 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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