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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재(鬼才) 이도사(李道士) (4편)

 

 

호랑이를 잡아라

 

황실의 고민거리였던 부엉이를 해결하여, 지위와 명성을 함께 얻은 이도사 앞에는 또 하나의 난관이 놓여있어 이를 극복해야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지리산(智異山)에 큰 호랑이(大虎)를 이도사에게 잡아오라는 어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마을사람들을 물어가거나, 해치는 등 호환(虎患)이 극심하여 그동안 몇 차례 명장군과 명포수 등을 보내 사살하도록 했지만, 워낙 크고 날쌘 호랑이를 아무도 잡지 못하고, 오히려 호랑이한테 당해 함흥차사가 돼버린 불상사까지도 있었던 것이다.

 

이도사는 임금께 며칠 동안만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사정했지만, "오직 그 호랑이를 잡을 사람은 국궁(國弓) 그대 하나 뿐이니 하루속히 해결해 짐의 걱정을 덜어주시오." 하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지리산을 향에 출발했다.

 

임금은 많은 군사와 무기를 주었지만 이도사는 소행이 탄로날 것을 걱정하여 모두 사양하고 오직 화살 한 촉과 말 한 필만 준비하였다.

사실은 말도 탈 줄 모르기 때문에 필요도 없었지만 단신(單身)이면 의심하겠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말 한 필은 데려간 것이다.

 

한양에서 지리산까지 천리가 넘는 길이었으므로 계속 걸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느티나무 위의 부엉이를 잡는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 보다 쉬웠으나 이번에는 명장 명포수들 까지도 생식(生食)해 버린다는 호랑이인 만큼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그 하나는 순수하게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대로 도망을 쳐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로 걱정이 돼 전주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주역 괘를 뽑아 보았다. 앉아 있는 방위가 동북간 방이므로 산괘(山卦)를 상괘로 하고 작괘 시간이 유시(酉時:오후 5∼7시)이므로 택괘(澤卦)를 하괘로 하여 산택손괘(山澤損)를 구성해 보았다.

 

이 산택손 괘를 풀이해 보면 선곤후길(先困後吉) 격으로 처음에는 어렵지만 나중에는 이익이 있다는 것으로, 그에 상응한 문구(文句)로 '탁마견옥 굴토성산(琢磨見玉 掘土成山)'이라 하여 돌맹이를 깎아 옥을 만들고 굴을 파서 태산을 이룬다는 뜻으로 무엇인가 계속 노력하면 마지막에는 마침내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라, 다소 기대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졌다.

 

이도사는 전주에서 다시 호랑이를 잡기 위한 대장정(大長征)의 발걸음을 서서히 옮겼다. 남원, 운봉, 인월, 산내 등을 경유하여 반선 달궁(達宮)에 이르렀다.

 

호랑이가 있다는 노고단과 뱀사골 일대는 수백 년 묶은 원시림이 하늘을 찌를 듯한 빽빽한 숲을 이루었고 여기 저기에서 드려오는 새소리와 짐승소리는 심산유곡(深山幽谷)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더욱 더 크게 들려왔다.

 

호랑이란 놈은 음양오행(陰陽五行)상 양성음동(陽性陰動)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본성은 양성적이고 맹렬한데다 포악, 잔인하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밤에 하므로 아무래도 깊은 밤을 이용하여 접근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도사는 호랑이가 잘 나타나는 곳을 근처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파악하고는 그 곳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믐이라서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칠흑같이 어둡고 원시림이 꽉 차 있는 숲 속에서 각종 짐승들의 발자국소리가 으시시하게 들려와 어명만 아니라면 당장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만감이 교차되는 이 순간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호랑이의 으르릉거리는 포효소리는 금방이라도 이도사의 목덜미를 물고 통째로 먹어치울 듯한 긴박감 마저 들게 했다. 숨을 죽인 채 말고삐를 꼭 붙들고 어깨와 몸을 낮춰 가시덤불을 헤쳐 지날 때 갑자기 머리 위쪽에서, "꼬르륵, 까욱" 하며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데, 이도사의 뒷목 부위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체가 철썩하고 떨어져 목이 수건처럼 걸쳤다.

 

이도사는 본능적으로 "으악." 고함을 치며 손으로는 목에 걸쳐 있는 물체를 엉겁결에 땅으로 떨어뜨렸다. 땅에 떨어진 것은 커다란 뱀으로써 뱀은 시∼시이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휴 십 년은 감수했네.' 온몸에 맥이 쭉 빠지고 식은땀까지 주루루 흘린 이도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걷기 시작했으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명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한참 동안을 계속 걸어가는데 짐승 썩은 것과 사람 머리통, 발목, 팔 등이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호랑이란 놈의 본거지가 근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도사는 숨을 죽인 채, 그 자리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돌과 흙더미가 굴러오면서 양 눈에 시퍼런 불을 켠 호랑이가 쏜살같이 이도사를 향해 쫓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도사는 일어서서 뛸 겨를도 없이 뒹굴고 기어서 숲 속으로 달아났다.

 

한참을 정신없이 기어가다, 머리를 고목에 턱하고 부딪쳐 뒤로 나자빠졌다.

금새 머리엔 주먹만한 혹이 툭 튀어나왔지만, 경황중이라 그것은 둘째로 치고 숨을 곳은 고목나무 뒤쪽이었다. 휘번덕이는 호랑이는 이도사가 숨은 곳까지 와서 코를 벌름 벌름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흥, 어흥." 하는 포효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이도사는, '이제는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머리를 부딪쳤던, 그 고목나무 뒤에서 호랑이 동태를 살펴보는데, 말 그대로 황소 만한 몸에 입은 어찌나 큰지, 이도사 같은 사람은 몸통 째 들어갈 정도여서 더욱 겁이 났다.

 

처음 계책으로는 가지고 간 말을 호랑이가 덤벼들면 대신 잡아먹게끔 묶어 놓고 도망칠 예상이었으나 호랑이소리가 나자 말은 어디론가 도망쳐버려 그 계책은 무너지고 말았다.

고목나무 뒤에 숨어서 호랑이 동태를 살피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으니 나도 그래야 되겠다.' 하고 다짐을 몇 번씩 했다.

 

그러던 순간 어디선가 달아났던 말이 소리를 쳤다. 그 순간 호랑이는 쏜살같이 숲 속을 가로질러 말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기회를 놓칠세라, 이도사는 재빠르게 이곳 저곳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부딪쳤던 고목이 수명을 다하여 윗 부분에는 가지도 없고 안이 텅 비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도사는 그 고목이 오래 전부터 풍수해로 윗 부분이 잘려 있음을 알고, 있는 힘을 다하여 그 부러진 곳까지 올라 우선 나무 속으로 몸을 피했다.

이만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에 긴장된 마음이 풀리자 묘책이 떠올랐다.

 

그것은 일단 호랑이를 고목나무 있는 곳까지 유인하는 작전이었다. 이도사는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호랑이 유인에 미친 사람처럼 열을 올렸다.

호랑이란 놈은 쫓아갔던 말도 놓쳤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도사가 들어앉아 있는 고목나무 밑까지 다가와, 그 나무를 발톱으로 득득 긁어도 보고 머리통으로 나무를 들이받으면서 소리를 쳐보는 등, 분통에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이도사는 자신이 숨어있는 그 나무통 안이 안전함을 새삼 느끼고 비장의 수단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한 비장의 수단이란 호분자사(虎賁自死) 즉, 호랑이란 놈의 약을 바싹 올려 그 호랑이란 놈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죽게 하는 것이었다.

 

이도사는 서서히 고함을 쳐 호랑이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호랑이란 놈이 이도사 고함소리에, '어흥, 어흥' 하면서 고목나무 주위를 날뛰면 이도사는 더 약을 올리는데, 때로는 호랑이와 같이, '어흥, 어흥' 해보기도 하고 손이나 발 또는 머리통을 고목나무가 부러진 구멍으로 순간순간 내보이기도 하는 등 갖가지 수단을 다 하자 호랑이는 분통이 극도로 올라 십여 척 높이까지 펄쩍펄쩍 뛰어 올랐다가 다시 멀찌감치 뒤돌아 갔다가는 거세게 달려와 고목나무를 공격하며 최후의 발악을 했다.

 

이렇게 하는 동안 호랑이는 지칠 대로 지쳐 입과 코에서 피가 쏟아지는데 모습은 아무리 짐승일망정 차마 불쌍해서 못 볼 정도였다.

 

그러나 이도사는 그러한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약을 계속 올리는데 어느덧 새벽이 다가왔고, 호랑이는 비틀비틀 하더니 땅바닥에 퍽 쓰러져버렸다.

 

이도사는 그래도 계속 약을 올리며 이젠 한 술 더 떠서 나무에 있는 나무 깍지를 호랑이에게 힘껏 던졌다. 호랑이는 몸을 겨우 일으켜, '어흐흥' 앓는 소리를 한번 약하게 내더니 다시 퍽 하고 쓰러져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쓰러진 상태에서 옆구리가 벌렁벌렁 숨을 몰아 쉬는 움직임이 있더니 이제는 아예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지쳐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만사불여 튼튼이란 말처럼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발을 벗어 던져보았다. 그러나 퍽 하는 소리만 있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이도사는 조심스럽게 그 나무에서 내려와 멀찌감치 서서 제법 큰 돌맹이 하나를 호랑이 머리통에 던졌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는 호랑이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등 짝에 신주단지 모시듯 묶어 놓았던 화살을 꺼내어 이도사는 호랑이 고환에 꽂아 놓았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 운봉 현감에게로 가서 그 소식을 임금께 알려줄 것을 청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임금님은 설마 했다가 또 다시 그 무서운 호랑이를 혼자서 잡았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이국포(李國抱)를 정중히 모셔오고 호랑이를 이송해 오라."는 어명을 내렸다.

 

※ 5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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