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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奇人) 용수쟁이 노인(1)

 

 

'앗! 이게 웬일인가? 우리 마을이 백리청해(百里靑海)라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주역팔괘(周易八卦)를 백지에 그려본 노인은 깜짝 놀랐다.

  

지금부터 1백여 년 전의 충청도 청주(淸州)에서의 일이다.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치산치수(治山治水)가 미흡해서 매번 홍수가 나도 어쩌는 수 없이 재난이 피해가기만을 빌 뿐이었다. 그래서 노인이 금년 홍수에도 마을이 무난할 것인가 하고 주역을 응용하여 여름철 장마를 대비한 우기(雨氣)를 판정해 본 것이다.

 

물론 그 마을은 본래 수해상습지로 해마다 닭·돼지 등이 떠내려가는 정도는 보통 있는 일이라 집이나 사람에게만 큰 피해가 없다면 다행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노인의 백지에 나타난 괘상(卦象)은 장마철에 마을이 물바다(白里淸海)가 되는 것으로 나와 있으니 여간한 걱정이 아니었다. 며칠을 두고 생각을 해 보았지만 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중의 하나가 홍수같은 일종의 천기정단(天機正斷)은 경솔하게 뽑아보지 않아야 될뿐더러 그러한 천기(天機)를 알고 있다 하여도 천기누설을 한 천해(天害)를 뜰 때 필요한 용수를 팔러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 용수를 등에 지고, "청주를 뜨시오." 하고 골목골목을 외치고 다녔지만 가을도 아닌 불볕 더위가 기승부리는 여름철이라서 용수를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노인이 팔러 다니는 용수는 그것을 팔아 어떤 이익을 취하자는 게 아니고 오로지 앞으로 홍수가 크게 일 청주(淸州)바닥을 뜨라는 소리로 청주에서 이사를 하란 뜻에서였다.

  

그러나 천기누설의 천해가 있어 아무에게나 마음 터놓고, "청주를 떠나가시오." 라고 도 못하고 술인 청주(淸州)에 비유하여 용수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청주 뜨시오."  "청주 뜨시오." 라고 표현하며 사전에 알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남들은 들판에 나가 일을 하고 점심때면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등 평온하게 지내는 모습들이었다.

"무슨 놈의 정신 없는 노인네가 이 여름철에 청주(淸州)를 뜬다고 용수를 팔러 다니는 거야. 아휴 답답해." 하고 겉보기에 어리석은 노인만 탓했다. 정작 답답한 쪽은 노인이었다. 머지 않아 마을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물바다가 될 터인데 그것도 모르고 푸념만 하고 있으니 더욱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의 지혜로는 노인의 깊은 마음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며칠 간을 땀을 흘리며 구부러진 허리에 용수를 지고 다녔지만 단 하나도 팔지 못한 채 석양 무렵이 되어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모든 것을 단념하고 꼬불꼬불한 산모퉁이를 돌아오는데 산기슭에 초가 한 채가 있었다. 그곳으로 터벅터벅 다가가 보니 집주인으로 보이는 백발노인이 있어 헛일 삼아, "노인양반, 청주 뜨는 용수 하나 사시오." 하고 말을 건네자 그 백발노인은, "알았소. 내가 그 용수를 전부 사리다." 하며 모조리 샀다.

  

기쁘기도 하고 심상치 않은 점도 있고 해서 용수를 팔러 다니던 노인은 백발노인에게,"아이! 뭐 술장사라도 하시려고요. 하나만 사시지 않고 웬걸 이렇게 다 사시는지요." 그러자 백발노인은, "그대가 나보다도 더 수고하지 않소? 그래서 다 사는 거요."

  

날이 어두워 앞을 잘 분간 못할 정도인데도 백발노인의 눈에서는 광채가 번쩍이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용수쟁이 노인은 웬지 겸손해야 한다는 마음이 우러나 머리를 숙인 채 한참 서 있는데 백발노인은, "자오가 상충이오. "하면서 금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용수쟁이 노인은, "자오(子午)가 상충(相沖)……."하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깊이 생각했다. 방금 그 노인은 보통노인이 아니었다. 왜냐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헤아리지 못하고 단 한 사람도 용수를 사지 않았는데 바로 그 백발노인은 모두 다 사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자오가 상충'이란 말은 역학(易學)에 씌여진 말로 자(子)는 밤 11시에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이고 오시(午時)는 낮 11시에서 13시까지를 말하는데 이 둘의 시간에 대한 자오(子午)는 서로 융통성이 있다는 것으로 밤 자시에 일어날 일이 낮 오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본시 용수쟁이 노인이 마음먹기로는 오일(午日) 자시에나 홍수가 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나 조금 전의 백발노인이 자오가 상충이라는 것으로 본다면 바로 내일이 자일이지 않는가. 그리고 전번에 괘를 뽑을 때 오일(午日)에 홍수가 날 것으로 예상돼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노인의 말대로라면 자일은 바로 내일이지 않은가?

  

노인은 아무래도 백발노인이 말한 자오가 상충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만약을 몰라 자신이 지금까지 용수를 팔러 다니던 이유를 들어 마을사람들 일부에게 가재도구 등을 미리 높은 곳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물론 노인은 천기누설임을 알면서도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인데 자신에게 내려질 천해(天害)가 두려워 묵인한다는 것이 양심상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집안 살림들을 옮기자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벌건 대낮에 필요 없는 용수인가 무엇인가를 팔러 다니더니, 이제 와서는 사람을 꾀어 이사를 시킨다."하며 미친 영감이라고 했다.

  

일부 마을사람들만 짐을 옮겨놓고 만약을 몰라 제일 높고 안전하다는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데, 밤 열시쯤, 즉 자시가 가까워질 무렵 장대 같은 소낙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사태평으로 노인의 말을 듣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사람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며 부산하게 몸을 피했다.

소, 닭, 돼지 등은 소리를 꽥꽥 지르며 큰 물줄기에 일순 휩싸여가고,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린애를 부둥켜안고 떠내려가는 지붕 위에서 소리치다 산더미처럼 밀려드는 물살에 휩쓸려 그만 사라지고 마는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미리 산으로 몸을 피해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에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노인은 끝내 아쉬워하며 후회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면서 푸념하기를, "차라리 이 늙은이가 뺨을 맞더라도 끝까지 설득을 했어야 하는데……."  밤 자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다음날 낮 열한시가 되도록 줄곧 쏟아져 마을 한 복판은 완전히 물바다가 돼버렸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한 노인이 삿갓을 폭 눌러쓴 채로 낚시질을 하는 것이 보였다. 먼 곳에서 보기에 그 낚시꾼은 금방이라도 물에 휩쓸려 떠내려 갈 것만 같은 불안함 때문에 용수를 팔러 다녔던 노인은 낚시를 하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가, "저 노인 양반, 물이 점점 불어올 테니, 저기 안전한 곳으로 가시지요." 하고 권했다.

  

그래도 듣는 둥 마는 둥 아무 소리를 하지 않고 있자 같이 간 청년들이, "뭐! 이런 영감이 있어 떠내려 가 죽을 것을 생각해서 이곳까지 와서 권하면 얼른 가야지 무슨 배짱으로 대답마저 안 해." 그때서야 낚시를 하고 있던 노인은 젊은이에게, "고맙네. 이 늙은이를 모시러 오셨다니, 그러나 잠시 후면 비가 개일 걸세." 그리고는 용수쟁이 영감을 향해서, "이보시오, 노인장. 이제야 자오가 상충임을 알았오?" 하면서 삿갓을 벗는데, 바로 그 백발노인이었다. 깜짝 놀란 용수쟁이 노인은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리며, "미처 사부님을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절을 하고 일어서는 순간 백발노인은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살아남은 자들은 뒤늦게나마 생명을 구하고자 용수까지 팔려 다녔던 용수쟁이 노인에게 찾아와 자신들의 경솔했던 언행을 용서해 줄 것을 청했다. 용수노인은 그 백발노인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괘를 뽑아본 결과 배괘동자(俳卦童子) 즉, 주역팔괘의 신법(神法)을 하늘에서 관장하는 육정육갑(六丁六甲) 사조(四曹)의 신동(神童)임을 알았다.

  

신동은 상대가 노인임을 감안하여 변장한 것인데 그 신동은 주역팔괘를 정성으로 수학하고 인간을 위해서 좋은 일에 응용하며 인간의 지혜가 미치지 못할 때 나타나 선도를 하고, 만약 악용을 하면 벌을 주는 신이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주역팔괘를 뽑을 경우 착한 마음으로 향을 피워 신동을 미리 불러놓고 작괘를 하므로 주역팔괘에 능한 사람일수록 다른 신이 접근을 못하게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주역괘에 능한 역술가가 다른 신을 몸에 받고자해도 신이 잘 내리지 않아 헛수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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