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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奇人) 용수쟁이 노인(2)

 

 

용수쟁이 노인은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는 더 배워야 한다며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암자에 들어가 있는데 날마다 그를 찾는 사람들이 밀려들었으나 한편으로는 하늘만 알고 있어야 하는 천기누설을 했다는 의미에서 아들 3형제가 물 속에 빠져죽는 천해(天害)를 꿈속에서 받았다. 다만 실제로 그래야 할 것을 백발노인으로 나타난 신동의 힘에 의해 무사했던 것이다.

  

암자에서 심신을 수양하며 어려운 일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신기한 예언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 박씨 성을 가진 한 청년과의 대화는 유명하다.

  

느티나무 골에 산다는 청년은 지극한 효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어머니가 몸져눕게 되자 백방으로 약을 써 보아도 치료가 되지 않자 약방문에도 능하는 용수쟁이 노인을 찾아왔다.

  

노인은 그 청년에게, "아무 날 어느 방향에서 어느 사람에게 약을 지으면 신효(神效)가 있을 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따라서 청년은 노인이 시키는 대로 약을 지어다 어머니께 드렸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쾌차했다.

  

완치된 어머니께서 사연을 묻고, 즉 노인이 시키는 대로했을 뿐이라는 아들의 말에 기뻐하더니 사례비도 주지 않고 그냥 왔다는 아들이야기에 크게 노여움을 사며 당장 가서 사례비를 드리고 오라시며 다소간의 돈을 주었다.

  

청년의 생각에, '전 번에는 그냥 오기도 했는데, 오늘은 어머니께서 드리라는 돈에서 절반만 주어도 되겠지.'하고 돈을 미리 나누어서 넣고 갔다.

  

노인 앞에 앉은 청년은 어머니 말씀을 하면서, "선생님 얼마 되지는 앉지만 받아두세요." 하고 미리 나누어 놓은 돈을 꺼내 노인 앞에 내밀었다. 청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그 노인은 아주 호된 모습으로 자기를 무섭게 쳐다보았다. 청년은 별 것 아닌 것 마냥, "저, 선생님! 왜 그러시지요? 제가 뭐 잘못했나요."

  

청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은 청년을 향해서, "네 이놈! 오른쪽에 감추어 둔 돈 내놔. 어머니께서 나에게 다 주라고 했지. 언제 너하고 나누어 가지라고 했어!"

  

얼굴이 홍당무가 된 청년은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리며,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라고 백배사죄하자 노인은 껄껄 웃으며 청년이 다시 내준 나머지 돈을 돌려주면서, "야! 이놈아! 어서 받아."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잔뜩 움츠리고 있는 청년은 마치 쥐가 고양이한테 쫓겨 어쩔 줄 몰라하는 주눅든 모습이었다.

  

노인은 청년의 마음을 안심시키고는, "네가 나에게 절반만 주고 네가 절반을 차지하게 된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고 오늘 내 일진이 절반만 받으라는 이미 정해진 일진이니 절반은 어차피 네 돈이니라."하며 돌려주었다.

  

노인의 신묘함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적인 너그러운 마음에 감탄한 청년은 그 노인의 제자가 되어 그 노인처럼 신묘함을 부리곤 했는데 하루는 문안차 사부인 그 노인을 찾아갔다. 가서 보니 한 여인이 사부에게 혼례택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곁에 있던 제자가 볼 때에는 사부는 지금 큰 실수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면 혼례택일에 있어서 신부가 피해야 할 방향 중에서 옥녀방(玉女方)이란 것이 있는데, 이 옥녀방을 피하지 않으면 신부가 아프거나 또는 여러 가지 살성(殺星)이 범하여 죽게 되는 것이다.

  

이 옥녀방은 계절에 따라 사방으로 봄에는 동쪽, 여름에는 남쪽, 가을에는 서쪽, 그리고 겨울에는 북쪽에 옥녀가 있다하여 그쪽으로 들어오거나 앉으면 불상사가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사부께서 옥녀방인 남쪽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택일을 해주는 것이었다.

제자는 금방 입에서, '사부님! 그것은 잘못입니다.'란 말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택일을 받은 여인은 자리를 떠나갔고 둘 이만 있는 기회를 틈타, "사부님, 아까 그 택일은 옥녀방에 걸린 게 아닙니까?"하고 조금은 자신 있게 물었다.

그러나 사부는 태연하게 자세하나 흩뜨리지 않고, "다음에 알게 될 것이야."하고 대답을 마쳤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제자는 길을 걷다 땀이나 쉴 생각으로 마을 근처 정자나무 밑에 앉아있는데 한 신부가 가마꾼들에 의해서 옥녀방을 범하면서까지 오고 있었다.

  

물론 보통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제자 눈에는 신부 가마 뒤에 옥녀란 악귀(惡鬼)가 따라붙어 가고 있어 신부에게 불상사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한 가지 더욱 놀란 것은 그 가마 속의 신부는 바로 일전에 사부께서 택일해 주었던 신부임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신부의 행렬 중에 일전에 사부네 집을 왔을 때 바로 그 여인과 같이 왔던 신부 어머니가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다 못한 제자는 사부의 은혜를 생각해서 뒤따라가던 옥녀란 악귀를 물리쳐 신부가 무사하도록 손을 썼다.

  

그리고는 사부에게로 숨도 돌려 쉴 사이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손님은 아무도 없고, 사부 혼자서 높다란 목침을 베고는 낮잠을 자고 있어, 제자는 급한 김에, "사부님, 사부님."하고 흔들어 깨웠다.

사부는,"응, 알았느니라. 거기에 놓여있는 종이를 떠들어보아라."

 

제자는 무심코 두 겹으로 접혀 있는 종이를 들추어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날카로운 필체로 산수화 한 폭이 그려져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고 정자나무 밑에 한 남자가 앉아 있고, 그 옆길에는 어느 신부가 가마를 타고 가는데 가마 뒤에는 머리를 산발한 채로 숨어서 따라가고 있는 옥녀란 악귀가 보였다. 그리고 백지의 공간에 '옥녀악귀 제자척출(玉女惡鬼 弟子剔出)'이라고 씌어 있었는데, 그 뜻은, '옥녀란 악귀를 제자가 내쫓아 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사부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훤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사부는, "그 방향이 아니고는 신부가 갈 만한 길이 없었는데 주역 괘를 풀어보니 네(제자)가 옥녀를 물리칠 것이 예상돼 마음놓고 택일을 해주었느니라."고 태연자약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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