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야담

 기인 열전

 해학과 재담

 잊혀진 풍속

 나의 뿌리찾기

기인(奇人) 사석(謝石) 선생

 

 

빵과 국수

 

"선생님, 오늘 온종일 걸어와 배도 고프고 밤에는 잠도 자야 하는데 오갈 데가 없으니 걱정이옵니다."

 

제자의 이 같은 성화에도 스승은 태연한 척 좀체 자신의 속마음을 겉으로 들어내지를 않았다. 그를 따르는 제자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나라 고종황제가 임금이 되기 전 사사로운 자리에서,"당신은 앞으로 임금이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예언했던 일로 좌중을 깜짝 놀라게 하였던 적도 있었던 사람이라 업신여길 스승도 아니었다.

 

훗날 실제 임금이 된 고종황제는 그를 불러 관리로 등용했으나 자신에게는 너무 과분하다 하여 사양하고는 하늘을 지붕 삼아 동가식 서가숙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는데 그 사람이 바로 사석(謝石) 선생이었다.

 

그는 주역팔괘(周易八卦)와 파자법(破字法) 등에 능한 고수(高手)로서 제자 한 사람을 데리고 방랑하던 어느 날. 날이 저물자 제자가, "선생님 걱정이옵니다. 오늘밤은 어디서 지내지요?" 하고 성급한 어조로 묻자 때마침 우물가를 지나고 있을 때였는데 사석선생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제자에게 "저 우물에다 돌 하나만 던져보아라."하고 말했다.

 

그러자 제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길가에 있던 주먹만한 돌 하나를 별생각 없이 집어 던졌다. 돌은 풍덩소리와 함께 우물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그 현상을 지켜보던 사석선생께서는 제자에게, "오늘밤 우리 두 사람이 신세를 지게 될 곳은 유석봉(柳石鳳)씨 집이 될 것이니라." 하고는 눈으로 훤히 보듯 말하고는, "마을에 반드시 유석봉이란 사람이 있을 테니 찾아보라."고 일렀다.

 

제자는 사석선생의 일방적인 지시에 못마땅해서 마음 속으로, "제기랄 몇 년을 두고 사석인가 조석인가 하는 사부와 같이 다니지만 오늘날까지 뭐가 뭣인지 알 수가 없으니, 원! 무엇 좀 가르쳐달라면, "자중해라, 경솔하지 말라, 아직은 때가 아니니라." 이래가지고 언제나 천도(天道)를 아는 사람이 돼. 아무튼 유석봉네 집이 어디에 있는지나 찾아봐야지. 만약 유석봉이 집만 없어봐라. 오늘은 한 마디 해 부쳐야지."

 

제자는 불만스런 김에 이런 생각을 했지만 실상 유석봉이란 집을 찾게 되자 사석선생의 예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짐 보따리를 풀고 숨을 돌린 후 제자는 사석선생에게 "어떻게 유석봉이란 사람이 이 큰 마을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지요?" 하고 물어보았다. 제자의 그 같은 물음에 사석선생은,

"아까 네가 우물에 돌(石)을 던질 때 버드나무(柳)에서 새(鳳)가 팔팔거리며 날아갔으니 이를 합쳐보면 유석봉(柳石鳳)이가 되지 않느냐. 그리고 이 집 번지를 물어보아라. 아마 64번지가 될 것이다. 그 또한 새가 팔팔하고 날아 팔팔은 64란 숫자가 나올 수 있는데 한 가지 더 확신을 주는 것은 그 새가 처음에는 북쪽으로 날아가려다 다시 서쪽으로 날아갔기 때문인데 본시 숫자의 방향은 동쪽에는 3·8 서쪽에는 4·9 남쪽에는 2·7 북쪽에는 1·6. 그리고 중앙에는 5와 10이 있는데 이것은 숫자의 기본원리로 대개 처음 일어난 일은 첫 번째 숫자, 예를 들면 북쪽은 1을 서쪽은 4를 써야 원칙이다.

 

그러나 홀수는 양(陽)이고 짝수는 음(陰)(奇陽隅陰)이므로 주야를 가려서 써야 하는데 이를 다시 비교하면 양수는 주간이고 음수는 야간이다. 비록 양수인 일(一)이라 할지라도 음기가 강해진 석양 무렵이므로 당연히 음수 6을 써서 64번지가 마땅히 되느니라."

 

사석선생의 이 같은 풀이에 제자는 더욱 더 궁금해 밖으로 나가 번지를 알아보았더니 64번지라고 주인인 유석봉이 대답했다. 이에 또 한번 깜짝 놀란 제자는 방으로 들어와 사석선생에게, "선생님, 그러면 저도 선생님 덕택에 조금은 아는 것이 있게 되었사오니, 오늘 저녁은 뭐가 나을지 선생님과 제가 한번 알아맞히기로 할까요?"

 

제자의 이 같은 제의에 선생은 쾌히 응락을 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은 옛날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적과 싸울 때 익히 활용했던 이른바 제갈공명 육임단시(六壬斷時)법을 응용하기로 했다. 제갈공명 육임단시법은 같은 월일시(月日時)에 괘를 만들 경우에는 어느 누구라도 동일한 괘가 나오게 되는 작법이었다.

 

그러므로 선생이나 제자가 동일한 시간에 괘를 뽑으니 같은 괘가 나올 수밖에. 그리하여 만들어진 괘가 누런 뱀을 상징하는 황사괘(黃蛇卦)가 나왔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똑 같은 괘일지라도 심역현기에 따라 그 판단만은 각각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는 저녁밥이 뱀처럼 긴 국수가 나올 거라고 했고, 선생은 틀림없이 먹음직한 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제자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황사 괘는 긴 뱀이니 국수가 나올 거라고 여유 있게 장담했다.

사석선생은 본래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라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응, 그래. 국수라, 그럴 수도 있겠지."

 

두 사람이 괘를 뽑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드디어 저녁 밥상이 들어왔다. 그런데 상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빵이 놓여있었다.

제자는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횡사 괘인데도 자신은 국수라 해서 틀리고, 선생은 빵이라 해서 적중하다니 신기할 뿐이었다.

 

제자는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사석 선생께 그 신묘하게도 적중한 연유를 물었다.

"사부님, 똑같은 괘인데도 어찌하여 사부님께서는 적중하셨고 저는 틀렸는지요?"

 

제자의 이야기를 신중히 듣고 있던 사석선생은,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곁들여가며 이렇게 설명했다."동일한 괘이지만 공간적 개념, 즉 회천기(回天氣)에 따라 변화될 수 있고 그 변화라 함은 자연적 섭리에 기인하게 되느니 한 마디로 괘만 알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악용할 염려가 있는 터, 너와 내가 똑같은 황사 괘라서 국수라고 판단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지만, 지금의 계절이 여름이었다면 틀림없는 국수가 나왔을 것이다."

 

사석선생의 이와 같은 설명에 제자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총명한 듯 호언장담했던 일들이 얼마나 경솔하고 허구적이었나를 새삼 깨달을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Copyright ⓒ ps50.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