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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奇人) 이토정선생(李土亭先生)

 

 

조선 중종 때. 주역팔괘(周易八卦)에 능통한 형중(馨仲) 이지함(李之函)이 있었다.

이지함은 그 유명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학문을 했고, 한때는 아산(牙山) 현감의 벼슬에도 있었으나 적성이 맞지 않는다 하여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총명하고 남 돕기를 좋아했던,   그는 성장하여 결혼을 해서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데 더욱 힘을 썼다.

 

부인과 자녀들은 남다른 고생을 함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토하거나 그것으로 인해서 싸움하는 법은 절대 없었다.

나이가 더 할수록 학문과 인격이 높아감에 따라 비록 없이 살긴 해도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이 날로 늘어 그들은 그들대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지함의 조언대로만 실행했다.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몸이 아파도, 장사가 잘 안되어도 이지함 말대로만 하면 모두 이루어졌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문전에 사람들이 줄을 이어갔다.

  

이지함은 주역팔괘에 능통하였던 터라 그 괘를 응용해서 닥쳐올 액을 미리 내다보고 피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문에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집을 놓아둔 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마포 나루터에 기둥과 상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흙으로만 쌓아올린 정자, 즉 일종의 토굴을 만들어 그곳에서 기거했다.

  

그런 연유로 세상사람들은 이지함을 토정(土亭)선생이라 부르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봐 달라고 하는 통에 순서를 기다리려면 며칠씩 걸리곤 했다.

  

토정선생은 그런 폐단을 줄이고자, 주역팔괘를 응용하여 미래를 알아볼 수 있는 예언서로 소위「토정비결(土亭秘訣)」을 만들어 그 내용에 기준하여 예언을 해 주게 되었다.

 

그런데, 그「토정비결」이란 책이 너무도 신기하게 미래를 잘 맞추자 우매한 백성들 중에는 근면성과 성실성을 무시한 채 약은 꾀로 악용하는 폐단이 일기 시작하여 할 수 없이 절반 정도만 맞고 절반 정도는 맞지 않도록 「토정비결」을 고쳐버렸다.

  

토정선생은 몹시 가난해 밥솥이나 갓(冠), 신발 등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어 쇠붙이(鐵)로 두들겨 만든 쇠 갓(鐵冠)을 쓰고 다녔고, 솥에 구멍이 났을 때는 쇠 갓을 뒤집어 놓고 솥으로 대용했고, 신발은 나무를 파서 만든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특히. 토정선생은 세상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항해 기술로 제주도를 왕래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광풍(狂風)이 몰아치는 악천후에 닻을 단 큰 배 들도 항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토정선생은 유유하게 조각배를 이용하여 제주도를 자주 왕래하였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랬는지는 아직도 신비 속에 쌓여있으나, 일엽편주로 항해를 할 때면 꼭 닭 네 마리를 배의 귀퉁이에 매달아 균형을 유지하여 침몰의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길을 가다가도 지팡이에 턱을 괸 채 서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개인의 운명을 매년마다 볼 수 있는「토정비결」과 주로 국가의 운을 비록(秘錄) 예언한「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이 있는데, 그 학술적 근거는 주역팔괘에 두었던 것으로「토정가장결」에는 우리나라 국운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원숭이·쥐·용(申子辰)해는 병란이 있고, 범·뱀·돼지(寅巳亥)해는 혼란과 옥사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대로 임진왜란·병자호란·을사사화·을사오적신(乙士五賊臣)들의 매국노(賣國奴)사건과 1926년 항일학생 시위운동사건 등은 그가 예언한 일면을 그대로 실증해 주었다.

  

토정선생은 호걸(豪傑) 기인(奇人)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운 기문기답(奇問奇答)으로도 유명했다.

  

어느 사람이 선생에게,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요?"하고 질문하자, "부막부어불탐(富莫富於不貪)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를 욕심내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인(貴人)은 누구요?"라고 질문하자 선생은, "귀막귀어부작(貴莫貴於不爵)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귀인은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요?"고 질문하자, "강막강어부쟁(强幕强於不爭)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다투지 않는 것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토정선생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몇날 며칠을 두고도 생각지 못할 명답을 즉석에서 하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달인(達人)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한번은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데, 제수 살 돈이 없어 쩔쩔매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를 머슴에게 주면서 어느 곳, 어느 시각에 그곳을 가면 얼마에 산다는 사람이 있을 테니 팔아 오라고 했다.

 

하인은 시키는 대로 가르쳐 준 장소에 가 보았더니 토정선생이 예언한 대로 그 장소에 아니나 다를까 인상착의 하나 틀리지 않은 한 노파가 그 가보를 보더니 두말하지 않고 사갔다. 하도 신기하여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면서 집으로 돌아 왔다.

 

하인을 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년 이맘때면 반드시 오늘의 그 시간에 그 가보를 다시 팔려고 그 장소에 나올 테니 그때 다시 사 오라."고 했다. 하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정말입니까? 아니, 정말로 그 사람이 다시 팔러 나온다고요.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그러나 선생은 웃음을 띄우며,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일년이 지나고 다시 작년처럼 제삿날이 다가왔다. 하인은 혹시나 하면서도 그 장소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선생이 예언한 그대로 그 노파가 그 가보를 다시 팔려고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토정선생의 많은 예언에 비하면 그러한 예언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사소한 것이었다. 토정선생은 이율곡(李栗谷) 선생과 친분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이념이 달라 다툰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한때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시끄럽게 되자. 율곡선생이 귀향을 하기로 작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토정선생은 율곡선생을 만나, "율곡마저 귀향을 하게 되면 당파싸움은 누가 막고 백성은 누가 다스리나."하며 설득을 해서 율곡선생의 귀향을 포기하게 한 적도 있었다.

  

선생이 일생을 마치자. 나라에서는 이조판서의 벼슬을 제수하고 강문공(康文公)이란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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